(육체적 고통 8할 정신적 고통 2할)
소위 잼민이 시절 남들이 자전거를 탈 때 나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고 또, 열심히 탔다. 나는 자기애가 많아서
인라인을 잘 타는 ‘나’에게 취한 채로 발을 뻗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잘 타는 나에게
취해 프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처럼 몸을 낮추고 발을
내 어깨너비를 넘어서 아주 양쪽으로 쫙, 쫙 밀어 뻗었다.
미끄러운 바퀴 탓에 삐끗한 순간!!!
아스팔트에 오른쪽 무릎이 갈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 찰나에는 살짝 얼얼하고 말았다. 무릎이 하얗게
될 정도로 갈리고 상황 인식을 하는 순간 3초후...
피가 와앙... 하고 빨갛게 나왔다.
집에 엄마가 있었기에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고 무릎에선
넓은 면적으로 피가 줄줄 흐르는 주제에 아무렇지 않은 척
어기적 어기적 집까지 갔다. 하필 엘리베이터를 어떤 여성분,
아기와 함께 탔고 부끄러웠던 나는 무릎을 보지 않고 앞만
보았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아.......~... ㅠㅠ”
소리와 함께 징징거렸다.
뼈가 보일 만큼 다친 것은 아니었기에 병원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 후 나는 두 달 동안 메디폼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메디폼에 진물이 계속 차올라서 자주 갈아줘야 한다는 점이 정말 불편했던 기억이 남아있으며 지금도
오른쪽 무릎엔 흉터가 남아있다.
...
때는 2021년 2월 26일 금요일 밤 10시 한양대 에리카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씻는 중이었다...
(태생적으로 손톱이 약했는데) 잦은 네일아트로
손톱이 약해져 있던 나는 샤워 중 짧게 스쳐 지나간 따끔!한 감각. 바로 상황
인식이 되지 않았고 손톱을 매만지니 계속 따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낡은 샤워기의 벗겨진 철 코팅 조각이 손톱 ‘위’로 박히게 된 것이다.
그대로 나는 응급실에 갔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검지 손가락에
부분 마취를 하고 핀셋으로 뽑아내려는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 조각을 빼내지 못해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나는 그날 밤, 새벽 엄청난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도 해보고 안 되면
손톱을 아예 들어내고
철 조각 제거하셔야 해요.”
...
...
이건 고문이 아닌가? 부분 마취를 해도 아플 것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다 억지로 잠을 청하고 대망의 다음날 아침.
엑스레이를 먼저 찍었고, 생각보다 그 얇은 철 조각이 뼈와 근접할 만큼 들어가 있었다.
부분마취를 한 뒤 아침에는 어제와는 다른 선생님께서 노력해주셨고
‘일단’ 다 뺐으나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작은 조각들이 남아있다면
손톱을 들어내야 한다고 하셨다. 다행히 다 제거가 되었고 그 이후
난 1년 반동안 손톱에 아무것도 칠하지 않았다.
처음은 2년 전 입학식에 가기 위해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간 날이었다.
그리고 미약하게 월경통이 있었다. 2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가고
1시간 동안 7호선을 탄 뒤 공릉역 1번 출구로 가려는 순간 갑작스레
속이 엄청나게 울렁거리고, 욱신거리며, 시야가 좁아지고, 어지럼증과
함께 구토를 할 것만 같았다. 하필 지하철 자리가 없어 서서 가고 있던
중이었고, 식은땀이 몹시 나며 다리에 힘까지 풀리는 상황.
이러다 기절을 하는 거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기절을 하면 병원에 실려가 입학식을 못갈 터.
정말 인생 최대의 정신력을 발휘해 역에서 내려
진통제를 사먹고
앞 산부인과에서 주사도 맞았다.
대충 월경통이 심해지면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하고 넘겼다.
2년이 지난 후 작년 겨울 말 미술학원 알바를 하러
홍대로 가려고 하던 날이었다. (아침 8시)
잠을 얼마 자지 못했고, 공백의 상태였으며
이 날 또한 월경을 하던 때였다...
태릉입구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려던
순간 불안하다 싶더니 또 다시
엄청난 구역질과 식은땀, 복통. 시야가 좁아지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에 출근하던 중 환승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이온음료 또한 구매해 먹었다.)
학원에 가서 검색해보니 이 증상이미주신경성실신전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쓰게 해준 장본인.
치과를 꾸준히 가지 않은 나는 작년 12월 스케일링을 하며 충치를 발견했다.
인레이 4개 레진 6개를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
(위 사진 담배 아닙니다... 분필입니다.)
의사선생님의
“다른 분들 치아가 돌이라면
윤은정씨 치아는 분필이에요.”
발언과 함께 내 돈 20만원을 보태서 총 150만원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치과의 극악무도함을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치과에 갔다. 첫 날은 충치를 제거하고 다음에 씌울
본을 뜨며 무난하게 끝이 났다. 아 (ㅋㅋ) 별 거 없다고 생각했다.
...
...
...
그리고 다음주, 그날 (본 떠서 만든 인레이를 충치 갉아놓은 곳에 씌우는 날)이
왔다. 의사 선생님의 “조금 시려요~...” 라는 말과 함께 나는 치과의 공포를
맛보았다. 치아를 깎아 신경과 가까운 곳에 기계로 바람을 쏘셨다.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이
윗 이빨을 통과해
잇몸
광대
눈을 뚫고
뇌까지
고통이 도달했다.
3초 만에 끝나면 좋을 뻔 했는데... 체감 30분이었다. 그 시린 곳을 자꾸
누르고 쑤시고 바람 총을 쏘고. 그날 하루종일 왼쪽 입부터 머리까지
얼얼했다. 현재는 인레이 3개를 마쳤다. 다음주 화요일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씌우면 길었던 충치치료가 끝이 난다.
(+ 처음 인레이 씌우고 다음 번 부터는 ‘조금’ 시리다고 하지도 않으셨다. 그냥 시리다고 하신다...)